오랜 기간 연애한 B씨와 결혼을 약속한 후 미국으로 2년 동안 함께 유학을 갔다가 귀국하게 된 A씨. 마음 같아선 약혼녀와 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만 결혼하고 한국에 정착하라는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입국하게 됐다.

학교 문제 때문에 약혼녀를 미국에 두고 먼저 입국하게 된 A씨는 B씨가 2~3주 후 입국할 때 많은 짐 때문이 힘이 드는 일이 없도록 약혼녀의 짐을 미리 들고 귀국하는 배려심을 발휘했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에서 짐을 수령하려던 A씨는 세관 직원에게 B씨 물건에 대한 세금을 내야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것이다. 2년 동안 해외에서 체류한 사람의 짐은 이사화물로 간주, 면세를 해준다고 알고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

현행법상 세관에서는 해외에서 1년 이상 살다가 온 사람을 '이사자'로 규정하고 이사자가 가지고 온 짐에 대해선 면세를 해주고 있다. 가족을 동반한 경우에는 해외에서 6개월 이상만 거주해도 '준이사자'로 분류돼 면세혜택을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 2년을 살다 온 A씨는 당연히 가지고 온 짐들에 대해 면세를 받을 줄 알았지만 B씨 물건에 한해서는 세금을 내라는 얘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세관 직원은 B씨의 옷가지와 화장품, 향수 등을 살펴보며 "타인의 물건을 가지고 온 것이 명백하다. 남자 혼자 살다왔는데 왜 여자 물건들을 가지고 왔느냐"라며 A씨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A씨가 "약혼녀의 물건"이라며 "며칠 뒤에 B씨가 한국에 들어올텐데 그 전에 짐을 몇개 챙겨온 것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오히려 세관 직원은 "타인의 물건을 가지고 들어오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A씨는 울며 겨자먹기로 세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

동반한 가족의 짐으로 인정받을 수 없냐는 호소도 먹히지 않았다.

A씨는 왜 같이 동거하던 약혼녀의 물건을 가족의 짐으로 인정받지 못했을까.

현행 이사물품 수입통관 사무처리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가족'의 개념은 배우자와 본인, 배우자의 직계존비속과 형제자매로 규정하고 있다. 민법에선 혼인신고를 해야만 가족으로 인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의 약혼자는 동반가족으로 인정되지 않아 이사화물 면세혜택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만약 A씨가 B씨와 혼인신고를 한 관계였다면 일어나지 않을 문제였다.

현행법상 외국에서 혼자 살다 온 남성이 여성의 물건을 가지고 입국하거나 반대로 여성이 남성의 물건을 가지고 입국하는 경우에는 이사화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부부인 경우에는 부부가 며칠 간격을 두고 입국하더라도 동반가족으로 인정하고 배우자의 물건을 이사화물로 간주해 면세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동반가족이 있을 경우, 가족 수보다 가재도구가 많다거나 모피 등의 옷을 많이 소유하고 있을 때는 면세혜택을 받지 못하게 돼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아무리 같이 살았더라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으면 법적으로는 타인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과세하는 것이 맞다"며 "약혼자의 짐을 덜어주려다가 오히려 타인의 물품을 가져왔다고 처벌을 받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